권흥주 보훈이야기.. (2026년8월9일) 김해인 애국지사 (164회)


c22fb8de4e824e2d5ef9947da7135b64_1786328451_16.jpg
c22fb8de4e824e2d5ef9947da7135b64_1786328451_4.jpg
c22fb8de4e824e2d5ef9947da7135b64_1786328451_65.jpg
c22fb8de4e824e2d5ef9947da7135b64_1786328451_96.jpg
c22fb8de4e824e2d5ef9947da7135b64_1786328452_2.jpg
c22fb8de4e824e2d5ef9947da7135b64_1786328452_53.jpg
c22fb8de4e824e2d5ef9947da7135b64_1786328452_84.jpg
c22fb8de4e824e2d5ef9947da7135b64_1786328456_33.jpg
c22fb8de4e824e2d5ef9947da7135b64_1786328456_59.jpg
c22fb8de4e824e2d5ef9947da7135b64_1786328456_9.jpg
c22fb8de4e824e2d5ef9947da7135b64_1786328457_17.jpg
 

김 애국지사는 당시 대전 대덕군 기성면 가수원 출신이다. 공주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1936년 같은 학교 학생들과 항일 비밀결사 조직 '명랑클럽'을 조직했다. 주로 일어 사용 금지, 신사참배 거부, 악질 일본인과의 교유 배척 등 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항거와 민족의식 고양에 앞장섰다.

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계한 본격 독립운동을 계획했다. 하지만 조직원 중 한 명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면서 조직이 드러나 김 애국지사와 회원들도 체포됐다.

 

김 애국지사는 1942년 9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.
 현재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3 묘역에 안장돼 있다.